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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

인생의 갈림길에서 항상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따라 선택한다. 우연이 주는 경험 속에서 그 느낌을 받으면 확신을 얻고 즉시 고민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만남의 순간과 지금은 지나쳐온, 선택에 따라 앞에 놓인 길을 되새길 때면 설렘에 휩싸인다. 단지 사람들이 흔히 좋다고 여기거나 다른 옵션이 별로라는 이유는 나를 완전히 설득하기에 모자랐다. 이 글에서는 가슴에 따라 움직였던 주요 인생의 갈림길을 살펴본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저녁 시간에 기숙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무위키의 공과대학 문서를 둘러보다 우연히 산업공학과 문서에 접속하게 되었다. 위키 페이지는 산업공학에 대해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경영적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던 것 같다. 코딩을 어디에 쓰는진 이해 못 했지만 일단 많이 한다고 나와 있었다. 1학년 때 경제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코딩을 좋아했지만 컴퓨터에 대해 배우기에 거부감을 가졌던 나는 산업공학과에서 구원의 빛을 보았다. 그렇게 내 지망 학과가 결정되었다. 사실 여전히 “산업공학과에서 뭐 해?”라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는 건 어렵고, 스스로 깨닫기도 입학하고서 수년이 걸렸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나를 산업공학과에 끌리게 했던 상상은 지금 봐도 얼추 맞고, 지금도 산업공학의 모든 전공을 흥미롭게 듣고 있다.

앞선 이야기 후로 열심히 산업공학과 진학을 위해 노력했던 나는 수시 6탈락이라는 어이없는 결말을 맞았다. 96명 중 60등 초반대였던 걸 감안하면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대학은 가야 하니 재수를 하게 되었다. 기숙학원을 가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과 함께 등록할 기숙형 재수학원을 찾아 경기 남부를 돌아다녔다. 첫 번째로 방문했던 하이퍼 의대관은 유명하고 시설이 좋았으나 별 감흥이 없었다. 사실 이미 재수한다는 사실에 풀이 죽어 사고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 몇 군데 더 돌다가 주변에 강남대성 기숙학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석에서 예약 후 가보기로 했다. 작은 방에서 부원장 선생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부원장 선생님께서는 전 서울과학고 교사로서 나를 손바닥 위에 두고, 아직 실패한 영재고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를 성공할 재수생으로 바꿔놓았다. 또한, 다음 해에 나와 같은 처지의 영재고/과고생을 모아 반을 꾸린다는 계획에 매료되어 그 자리에서 등록을 결정했다. 그렇게 재수 기간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일 년 내내 열심히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대학원 가기로 정한 계기에서 다룬다.

대학교 졸업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우연히 수강하게 된 프로그래밍 언어가 내게 강렬히 다가왔다. 수업을 맡으신 교수님과 면담 도중 강한 확신을 얻고 해당 분야로 진출하기로 마음먹었고, 자연스레 대학원도 진학하게 되었다. 한편, 같은 시기 처음 배웠던 기계학습과 딥러닝은 프로그래밍 언어와 마찬가지로 재밌게 공부하고 성적도 괜찮았지만, 프로그래밍 언어 수업을 들을 때만큼의 감동이 없었다. 처음에는 AI가 유망하고 주변에서도 많이 시도하는 분야여서 관련 대학원을 진학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이미 프로그래밍 언어가 머리에 가득 찬 순간 고려 대상조차 아니게 되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후회 없는 삶의 태도를 일깨워주어 기억에 남는다. 적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따라 선택했을 때 후회를 한 적은 없었다. 비록 눈앞에 고개를 내민 갈림길이 스트레스를 더하더라도, 다음으로 가슴 떨리는 일이 무엇일까 기대하며 오늘도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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